사랑하는 자녀가 학교폭력 피해를 당하면 가장 먼저 찾게 되는 게 바로 학폭위 '학교폭력대책 자치위원회'입니다.
그런데 학폭위가 제 기능을 하기는 커녕 오히려 피해자를 2번 울리고 있습니다.
피해자가 전학을 가야하는 실태, 김유림 기자의 더 깊은 뉴스입니다.
[리포트]
척추를 잘라내는 대수술로 거동이 불편한 김씨에게 유일한 희망은 초등학교 3학년 아들입니다.
[김모 씨 / 학교폭력 피해자 아버지]
제 아들이에요. 그냥 사진만 봐도 아실 거예요.
하지만 항상 웃던 아들은 새학기 들어 말수가 줄었습니다. 온 몸은 멍투성이가 됐고 연필로 찍힌 자국도 발견됐습니다. 이유는 바로 학교폭력이었습니다. 같은 반 학생 6명이 한 달 넘게 책장이나 여자 화장실에 가두고 폭행한 것.
김씨는 학교폭력대책 자치위원회, 학폭위에 가해학생 처벌을 요구했지만. 처벌은 서면사과와 접촉 금지가 전부였습니다.
[학교 관계자]
그 당시만 해도 ‘강제로 학급을 분리할 정도의 심각한 상황이냐.’ 그냥 같이 짓궂게 노는 정도로 판단해서 다시는 괴롭히지 않겠다는 약속은 말뿐이었고 괴롭힘은 다시 이어졌습니다.
가해 학생 부모에게 연락도 해봤지만 남는 건 상처 뿐이었습니다.
가해자 아버지: "근데 우리 아이가 맨날 괴롭혔다고 얘기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제 아들은 그렇게 한 건 아닌데."
피해자 아버지: "치료비가 너무 부담스러워요"
가해자 아버지: "얼마를 원하시는 건데요."
[김모 씨 / 학교폭력 피해자 아버지]
열 살 된 아이가 얼마나 마음에 상처가 크겠어요. 학폭위라는 것 신빙성도 없고. 만약에 우리 아이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떻게 책임질 거예요.
비슷한 사례는 또 있습니다. 중학생 자녀가 왕따를 당한 사실을 알고 학폭위를 찾은 A씨. 하지만 오히려 훈계를 들었습니다.
[학폭위 당시 녹취]
"(피해학생)이 버티고 노력하는 게 있어야지. 지금은 1년 좀 지난 거잖아요."?
결국 전학을 선택한 쪽은 A씨의 아들이었습니다.
[김유림 기자]
학폭위는 학교폭력을 교육적으로 해결한다는 취지로 2012년에 만들어졌습니다.
위원은 5명에서 10명 사이로 구성되며 가해자와 피해자를 면담한 뒤 서면 사과부터 강제 전학 사이의 처벌 수위를 결정합니다.
학폭위는 최근 재벌손자와 탤런트 윤손하 씨 아들의 연루의혹이 제기된 숭의초등학교 사건에서도 무용론이 제기됐습니다.
이 초등학교에서 학폭위원을 맡은 7명은 모두 교사와 학부모들. 제3자가 아니라 당사자 입장인 학부모와 교사들이 사건을 심의하는 구조입니다.
[정수경 / 변호사(초등학교 학폭위원)]
"학교장이 어떤 아이를 지지하는지 가해자 쪽인지 피해자 쪽인지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밖에… 서면사과로 넘어갔으면 좋겠다고 명시적으로 밝히기도."
법률가나 경찰, 의사같은 외부 전문가의 의무참여 규정이 없기 때문에 객관적이고 냉정한 심의가 불가능한 겁니다.
이 때문에 학폭위 결정에 불복하고 지자체에 재심을 청구하거나 소송까지 가는 경우가 갈수록 늘고 있습니다.
[서울교육청 관계자]
"다들 불만스러워 하고 있는 거죠. 학폭위가 열리는 순간 사과와 화해는 사라지고 처벌을 둘러싼 법률 투쟁에 들어가는 거죠."
교육선진국들은 학교폭력을 형사사건 수준으로 처리합니다.
스웨덴에선 학교 폭력이 발생하면 무조건 경찰에 신고해야 합니다. 독일에선 중대한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학교가 가해학생을 경찰에 고소해야 합니다.
우리도 학교폭력 사건을 전문 심리하는 외부 기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민경 / 순천향대 초빙교수]
"학폭위가 외부에 설치됐을 때 법적으로 말하면 양형기준이 일관성있게 가다 보니 처벌에 대한 이의신청할 가능성이 적죠."
[최현숙 / 학교폭력 피해자 보호단체 대표 ]
(지금 상황에서는) 가해 학생은 끝까지 선처를 받습니다. ‘다시는 내가 범죄자가 되지 않아야겠구나, 내가 가해자가 되면 안 되겠구나’ 느끼고 그 범죄를 딱 멈춰야 학교 폭력을 근절하는 것이지.
채널A뉴스 김유림입니다.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연출 김지희 최승희
글 구성 남윤지 이소연
그래픽 김민수